‘얼굴이 커서 턱을 깎고 싶다’며 내원한 지민(21·가명) 씨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턱을 가능한 많이 깎고 싶어요. 얼굴 비율이 1:1:0.8 일 때 동안이고 예뻐보이잖아요. 신경선에 바짝 붙여 깎으면 얼마나 줄일 수 있나요?”
자주 듣는 이야기라 평소처럼 설명을 드렸습니다.
“턱은 짧다고 더 예쁜 것이 아니에요. 턱을 너무 깎으면 오히려 얼굴이 넓고 커 보여요. 당연히 살이 늘어지기도 쉽죠. 의학이나 미술 분야에서 모두 상, 중, 하안면의 높이가 1 : 1 : 1일 때 아름답다고 봅니다. “
지민 씨는 저에게 최신 트렌드를 알려주십니다.
“원장님 그건 옛날 스타일이죠. 요즘은 1 : 1 : 0.8이 황금. 비율이잖아요.”
제가 되묻습니다.
“하관이 짧아서 예쁜 연예인이 누가 있을까요?”
“그야 많죠. 당장 (블랙핑크) 제니랑 (에스파) 카리나만 봐도 턱이 짧아서 예쁘잖아요.”
제가 두 분의 사진을 꺼내 보여드립니다.
“말씀하신 두 분도 턱이 짧지 않아요. 단언컨대 [1 : 1 : 0.8]이면서 예쁜 얼굴은 없어요. 얼굴이 작고 동안으로 보이는 연예인들도 턱은 짧지 않아요. 뼈를 너무 많이 깎으면 예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과연 1:1:0.8이 아름답다는 근거는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1:1:0.8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 보면 놀랍게도 거의 모든 자료가 ‘한국 성형외과’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정확한 기준점을 따라 비율을 측정한 자료는 찾을 수 없습니다. ‘1:1:0.8이 동안이고 예쁘다 카더라’는 말뿐 입니다.
마치 ‘선풍기 괴담’처럼 한국에서만 널리 알려진 ‘1 : 1 : 0.8 괴담’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어떤 비율이 자연스럽고 예뻐 보이는 지는 우리의 눈으로 확인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설명이 굳이 필요할까요?
이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 : 1 : 0.8] 이란 말의 기원을 알아야 합니다. 십 수 년 전 한 성형외과에서 [1 : 1 : 0.9]라는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이 광고는 더 작고 예쁜 얼굴을 바라던 이들을 절묘하게 자극했습니다. [1 : 1 : 0.9]가 더 예쁜 비율인지에 대한 근거는 희박했지만 광고는 크게 ‘히트’ 했습니다. 한동안 [1 : 1 : 0.9] 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른 성형외과에서 [1 : 1 : 0.85]라는 문구를 내세웠습니다. 광고에서 ‘수치 경쟁’이 일어났고, 또 다른 곳에서 더 ‘세게’ [1 : 1 : 0.8]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 : 1 : 1 은 구닥다리]이고 [1 : 1 : 0.8 이 최신 트렌드]라는 이야기가 덧붙었습니다. 어느새 [1 : 1 : 0.9] 마저 뒤처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생각보다 잘 변하지 않습니다.
40여 년 전 미녀 배우들은 지금 보아도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2020년대의 연예인 얼굴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1993년에 크게 ‘히트’했습니다. 1994년에 한 초등학교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시험 문제에 많은 학생들이 ‘침대’를 골라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말이 그저 광고 카피일 뿐인 것을 잘 압니다. [1 : 1 : 0.8 ] 의 본질 또한 ‘성공한 광고 카피’일 뿐입니다. 실체 없는 광고 카피인 [ 1 : 1 : 0.8 ]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표준’ 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오답을 썼던 학생들처럼, 광고 카피를 사실로 믿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술로 얼굴이 바뀌는 것은 시험 오답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뼈를 너무 많이 깎으면, 얼굴의 균형이 깨져 오히려 커 보이고 살이 남아 처집니다. 동안이 될 것 같지만 살이 처지면 오히려 나이 들어 보이기 쉽습니다. 안면윤곽수술 후 턱끝이 어색하게 뾰족하거나, 얼굴선이 늘어지고 살이 처져 재수술을 고민하시는 분들을 보면 하관을 지나치게 줄인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지민 씨처럼 “턱뼈를 최대한 많이 깎아서, 짧게 만들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께 이런 사실을 매번 설명드립니다. 하지만, [1:1:0.8]에 대한 오랜 믿음을 바꾸기 힘듭니다. 지민 씨도 제 설명을 듣는 동안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고민해 보겠다던 지민 씨는 이후 다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턱을 아주 짧게 깎아준다는 곳을 찾아간 것 아닐까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지민 씨가 현명한 선택을 하셨길 바랄 뿐입니다.
출처 : https://kormedi.com/1416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