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유독 몇 가지 이유로 반려견을 데리고 병원에 내원하는 보호자가 많습니다. 이 무렵 자주 볼 수 있는 음식, 물건 등이 반려견 건강을 위협하는 것인데요. “이게 반려견에게 위험하다고?”라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을철 외출 시 우리 코와 신발을 괴롭히는 열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은행입니다. 반려견과 산책할 때도 거리 곳곳에서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을 밟을까 봐 조마조마하게 되는데요. 사실 더 큰 문제는 반려견이 은행을 먹는 것입니다. 은행은 반려견에게 치명적인 음식 중 하나로 구토, 설사, 복통 등 소화기 문제는 물론, 발열이나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을 유발합니다. 평소 위장관이 약한 반려견이라면 은행 속 독성 물질로 혈변, 흑변 증상까지 보일 수 있습니다.
반려견에게 위험한 은행 성분은 시안배당체(청산배당체), 메틸피리독신, 아미그달린 등입니다. 시안배당체는 사과, 복숭아 등 과일 씨앗에 주로 들어 있고 각종 소화기 질환을 일으킵니다. 메틸피리독신은 불로 가열해도 사라지지 않는 물질로, 소량만 섭취해도 중추신경계에 이상 반응을 유발합니다. 경련, 비틀거림, 다리 떨림, 어지럼증 등이 대표적이죠. 아미그달린은 중독될 경우 두통, 메스꺼움, 복통, 구토 등을 초래합니다. 그 밖에 은행 악취의 원인인 빌로볼이라는 성분도 반려견 피부를 자극해 가려움증, 발진,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킬 수 잇으니 산책 중 반려견이 은행을 밟거나 밟은 발을 핥았다면 깨끗하게 씻기고 양치를 해줘야 합니다.
산책 중 조심해야 하는 또 다른 식물이 있습니다. 중대형 반려견 눈높이와 비슷한 키의 나무에서 자라는 빨간 남천열매입니다. 이 열매에는 반려견에게 해로운 독성이 포함돼 있어 호흡 곤란, 발작, 혼수 상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니 주의해야 합니다. 가을 들판에 피는 국화, 베고니아 같은 꽃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려견이 이 식물들과 접촉하면 피부염이 생기기도 하고, 호기심에 뜯어서 먹기라도 하면 구토, 설사, 구내염, 입술 부위 통증 등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철에 많이 먹는 과일인 무화과도 반려견을 기르는 집에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무화과는 잎과 줄기, 껍질에 독성이 있는 뽕나뭇과 피쿠스속(Ficus·무화과나무속) 과일입니다. 특히 무화과 속 소랄렌 성분이 반려견에게 독성 증상을 유발할 수 있죠. 또 무화과 껍질의 흰색 수액에는 피신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 있습니다. 피신은 사람이 섭취했을 때는 소화가 잘 되도록 돕지만 반려견에게는 위장관을 자극하고 구토, 설사, 복통을 일으킵니다. 과도한 유연 증상, 피부 발진과 가려움증을 유발하기도 하니 무화과를 먹은 것으로 의심되고 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바로 동물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가끔 껍질이 아닌 과육만 주는 것은 괜찮지 않느냐고 묻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모든 과일은 반려견이 섭취하기에 당분이 높은 만큼 주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새 학기 학용품 물어뜯지 않도록 주의
가을 무렵 반려견이 동물병원에 내원하는 또 다른 의외의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주로 벌어지는 일인데, 아이들이 가을 학기 시작을 앞두고 방학 숙제를 하거나 새 학기 과제를 할 때 반려견이 몰래 학용품을 가져가 씹고 물어뜯고 놀다가 먹는 경우입니다. 그림물감에는 중금속과 화학용제가 함유돼 있어 반려견이 이를 섭취할 경우 중금속 중독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동용 수성물감은 독성이 낮은 편이긴 해도 반려견에게는 위험합니다. 또 파스텔 등에도 대부분 중금속이 들어 있죠. 풀이나 본드 같은 접착제 중에서는 유기용제가 사용된 종류가 반려견에게 아주 위험합니다. 피부 및 점막 자극, 중추신경 억제, 부정맥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니 소량이라도 섭취했다면 바로 동물병원을 방문해 위세척을 해야 합니다.
연필심이나 샤프심도 화학적 독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반려견을 기를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할 물건입니다. 무독성 흑연으로 만들어 성분 자체가 반려견에게 독성을 나타내지 않더라도 식도, 위장관 내벽에서 이물질에 대한 염증 작용이 일어나 부종, 통증, 열감, 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 내벽에 살짝 박힌 경우라면 피부세포가 각질화돼 떨어져 나가면서 저절로 사라지지만, 점막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면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려견이 연필심이나 샤프심을 삼켰다면 보호자가 일차적으로 반려견의 구토를 유발해야 하고, 이후에는 앞선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동물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통해 상태를 확인한 뒤 제거해야 합니다.
출처 - https://weekly.donga.com/culture/article/all/11/52199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