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백신 접종을 예약한 A씨(65세)는 타이레놀을 사기 위해 동네 약국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나 대형 약국 대부분에서 타이레놀이 동이난지 오래였다. A씨는 결국 두 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동네 약국에서 간신히 타이레놀을 2개 구할 수 있었다.
최근 약국에는 타이레놀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타이레놀만 찾자 벌어진 일이다. 이와중에 약사들에게 타이레놀을 공급해 준다는 사기꾼까지 등장해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섣불리 제품명을 언급해 벌어진 촌극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정례브리핑에서 "접종 후에 어느 정도 불편한 증상이 있으시면 타이레놀과 같은 소염효과가 없는 진통제는 복용을 하시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는 발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보건 당국은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미열에 대비해 해열제 복용을 돕기 위해 상품명을 직접 언급했지만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커지고 말았다. 이 발언 이후 약국은 물론 의약품유통업체에도 타이레놀은 수개월 째 품절 상태다. 보건 당국이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약을 대체 복용해도 된다고 적극 홍보했지만 효과가 없다.
업계는 이미 타이레놀이 해열 진통제의 ‘보통명사’가 됐기 때문에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접종자들이 타이레놀은 알아도 아세트아미노펜은 알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뒤늦게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을 권고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타이레놀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란을 틈타 최근에는 타이레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를 악용한 사기꾼까지 등장했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대한약품공업의 영업사원을 사칭한 인물이 다수의 약사에게 "타이레놀 500㎎ 10정 2100원 세금계산서 발행" "보건부에서 특별지시사항으로 납품하는 거라 약사 카드로는 결제가 안 됩니다" 등의 SNS 메시지를 보내 현금 선 입금을 유도했다. 대한약품공업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액 또는 주사제 등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 타이레놀을 생산·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약사회는 회원 약사들에게 "타이레놀 품귀 현상을 악용해 대한약품공업 직원을 사칭한 '타이레놀 현금구매' 사기에 주의해 달라"며 "관련 내용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자 대한약사회도 당황했다. 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특정 제품 상표명을 정책브리핑 등 공식 발표에서 언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타이레놀 성분명인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안내할 것을 촉구했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간 약은 아직 시중에 재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다.
결국 타이레놀은 제2의 마스크가 됐다. 수요는 폭증하고 있으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백신 접종 시민들만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정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민들의 보건 안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명심해야 한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 손영래 반장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일반의약품은 타이레놀을 포함해 총 70종으로, 의사 또는 약사의 복약지도에 따라 어떤 제품을 복용해도 상관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다.
출처 : 포춘코리아(FORTUNE KOREA)(http://www.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