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
난 사실 우리나라 가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기존에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던 '소몰이 창법'으로 대표되는 SG Wannabe류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그 첫번째 이유이고, 트렌드를 타는 음악들은 몇 주 전, 몇 달 전, 빌보드를 통해 비슷한 음악들을 접할수가 있는데 굳이 얼마가 지난 후에 우리나라 음악으로 그것을 복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두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한가지를 덧붙여 보자면, 아이돌 그룹들은 비쥬얼과 쇼프로를 통해서만 승부하지 음악적으로는 승부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러던 지난 10월 초, 우연한 기회에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원더걸스의 Tell Me (Sampling from “Two of Hearts”) - 원더걸스를 그 영상과 함께 접할 수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 음악과 비쥬얼이 내게 가져다 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 음악과 영상은 쉽사리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후엔 영상을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그동안 힙합음악으로 점철되어왔던 내 미니홈피의 배경음악까지 Tell Me가 차지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렇다면 나를, 그리고 대한민국 수많은 사람들을 (특히 남성들을) Tell Me로 빠져들게 한 그 마력은 무엇이었을까?
The 'Tell Me' Era
우선 곡의 타이틀에 자랑스럽게 달고 있는 ' Two Of Hearts - V.A'라는 곡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이 곡은 Stacey Q의 앨범인 'Better Than Heaven'에 실려있는 곡으로 1986년 빌보드 싱글 3위까지 기록했던 곡이다. 20년 전의 곡이지만 지금들어도 그다지 촌스럽지 않은 이 곡은 사실 1위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Stacey Q가 당시 2개의 레코드사와 동시에 계약을 하는 바람에(!) 다른 두개의 레코드사에서 싱글이 각각 발매되어서 그 영예는 놓쳤다고 한다. 30살이 다 되어가던 그녀는 이 곡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고 앨범은 골드를 기록하지만, 이 곡 이후 그녀가 100위 안에 올려놓은 싱글은 단 두 곡에 불과하며, 이후 발매된 5개의 앨범 (베스트 앨범 포함)은 모두 100위 안에 들지 못하며 그녀는 반짝스타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에 이야기했던것과 같이 '미디엄템포 발라드'와 '빌보드 따라잡기'식 음악들이 차트를 지배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원더걸스가 가져온 이 곡은 가요계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것은 이 곡이 그동안 비슷한 작법과 기교만을 강조한 창법, 혹은 기존의 최신 히트곡을 비슷하게 편집하는 법으로 만들어졌던 기존 히트곡들의 히트공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이 인기를 얻은 것은 노래 와 춤에 있어서 모두 인기를 얻었기 때문인데, 노래를 살펴보면 올드스쿨 샘플링을 이용한 작법은 칸예 웨스트 (Kanye West)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훅은 50 Cent의 훅을 무색하게 할만큼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곡이 지금의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와 함께하는 그들의 춤인데, '살랑살랑'으로 통하는 도입부의 도발적인 율동과 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희의 깜찍한 '어머나' (사실 '어머'가 맞는지 '어머나'가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겟다), 후렴구와 함께 이어지는 디스코 풍의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춤들은 '비디오와 함께 보지 않으면 매력이 1/3로 줄어든다'는 말까지 낳을정도로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있다.
16세에서 20세에 불과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굉장히 다양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리더인 선예(sunYe)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그녀의 이름이 내가 좋아하는 힙합아티스트인 칸예(kanYe)와 비슷하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는 기존의 섹시스타인 이효리, 채연 등이 가지지 못한 순수함과 미소를 가지고 있고, 좀 더 어린 멤버들인 선미나 소희가 갖지 못하는 섹시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꼭 선예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멤버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멤버의 팬이 다른 가수 하나의 팬과 비슷할만큼 지금 그들의 인기는 정말 '열풍'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정도이다.
한계, 그리고 미래
하지만 그녀들이 지금 결코 '완성형'인 것은 아니다. 팬들도 '라이브 실력'이라는 말 앞에선 고개를 떨굴만큼 그녀들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이제 겨우 첫 앨범을 발표한만큼 그 발전가능성 또한 많다. 현재 이바보 - 원더걸스가 후속곡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는 가운데, 원더걸스는 또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 그들의 놀라운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 '원더걸스 열풍'으로 남을 것인지, '텔미 열풍'에서 사그라들 것인지는 각자의 개성표출, 실력향상, 그리고 또다른 곡이 가져다줄 중독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by 정인철 (http://paper.cyworld.com/dilosj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