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근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을 두고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놔 논란이 커졌다. 이번 판결에 이어 문신사의 의료법 위반에 대해서도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모인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 허가를 받지 않은 이들의 문신 시술을 금지하고 있다.
12일 관계 기관에 따르면 문신사의 의료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심리 중이다. 전원합의체가 심리중이라는 것은 재판부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거나 종전 판시에 대해 변경 필요성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관련 판결과 유사한 파격적인 판결이 조만간 나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3년째 기다리고 있는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장은 "이전과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며 "예전에는 바늘로 찌르고 피가 나다보니 의료행위의 일종으로 판단했는데 지금은 상식적으로 의료행위일 수 없다는 데 법조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청주지법은 눈썹 문신 등 시술을 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40대 미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료인 면허가 없는 사람이 반영구 화장 시술을 한다고 해서 '보건위생상 위해'가 따를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색소를 묻힌 바늘로 피부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찌르는 단순한 기술의 반복인 만큼 고도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귀걸이용 귀를 뚫는 행위가 일상화된 것처럼 해당 시술도 한정적인 의학지식과 기술만으로도 가능해 보인다"며 "염료 등으로 인한 부작용은 해당 물질의 생산 유통과정에서 다뤄야할 문제"라고 판시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문신 시술자는 35만명,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은 전국에 1300만명에 이른다. 현행 국내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일반인이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의뢰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의료인만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유일한 국가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자격, 면허 등을 통해 직업제도의 하나로 문신 시술을 관리할 뿐 의료행위로 보지 않는다.
임보란 회장은 지난 2020년 일본 대법원이 역사상 처음으로 문신 시술을 합법으로 인정하면서 ‘의료인 면허 없이’ 문신이 가능해진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법이 일본 법 체계를 본 딴 만큼 주변국 상황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법원이 시대적 흐름을 감안한 새로운 판결을 내놓는 이유에 대해 최혁용 태평양 변호사는 "위해의 핵심은 '정보비대칭'에서 발생하는데 정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산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 분야든 위해의 정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100년 전 생화학자, 병리학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 비타민은 학계에서도 존재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합성 자체가 어려워 아무나 쓸 수 없었지만 대중화된 지금 어린아이들이 직접 사 먹는 일반 식품에도 비타민이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다.
최 변호사는 "위해의 기준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대중화되면서 위해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법원이 뒤늦게 현실을 받아들여 판례가 변경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병원 밖에서 병원 안으로 확대 추진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응급구조사 역시 정보량이 늘어나니까 사용을 통한 위해보다 이익이 더 커져 병원 안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문턱이 낮아질 만한 의료행위로 '예방 접종'을 꼽았다. "의사가 예방 접종에 대해 배타적 권한을 갖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약사들이 거의 모든 예방 접종을 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간호사도 의사 지도없이 예방 접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시대 백신 접종이 일상화된 가운데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방 접종 행위의 문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그러면 의사의 역할은 계속 축소되냐"는 질문에 최 변호사는 "매번 새롭게 의약품으로 개발되는 물질들은 모두 의사만 처방할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일반의약품이 되고 건강기능식품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항상 새로 개발되는 약이 생긴다. 의사나 과학자의 역할이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