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희 사건’을 일으킨 성형외과가 환자 사망 이후에도 ‘14년 무사고’ 광고를 하다 받은 3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신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부과된 과징금은 4050만원으로, 업무정지로 받을 수 있는 피해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이 병원은 처분을 받고 1년여 뒤에 다시금 같은 광고를 게재하다 보건소로부터 재차 고발당했다. 최근에도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는 광고를 진행하다 보건소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았다. 가벼운 처벌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환자 사망 후 '무사고' 광고... 돈으로 업무정지 갈음
1일 서초구보건소 등에 따르면 권씨가 수술을 받고 사망한 서울 신사역 인근 성형외과가 받은 3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병원이 과징금 4050만원으로 갈음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씨가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사망했음에도 ‘14년 무사고’란 광고를 하다 벌금 100만원에 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은 뒤 발생한 일이다.
병원은 이중 업무정지 3개월을 과징금으로 대체했다. 보건당국은 금액을 현행법령에 따라 4050만원으로 산정했다. 일 45만원 꼴로, 강남 일대 성형외과의 기대수익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이다.
의료법은 법이 금지한 의료광고를 한 의료기관에 대해 1년 이하의 업무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법은 이를 다시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금액산정기준을 대통령령에서 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의료기관의 수익에 따라 과징금을 차등해 부과하도록 한다. 연수익 5000만원 이하 기관은 하루에 1만8000원, 5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면 하루 5만5000원, 1억에서 2억 사이일 경우 하루 16만4000원을 납부토록 하는 식이다.
이에 따르면 문제 성형외과는 연간 20억원 이상 수입을 거두는 의료기관으로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성형외과가 90일 업무정지를 4050만원으로 갈음해, 일평균 45만원의 과징금을 납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준 연 20억~30억원의 수입이 있는 의료기관의 일평균 과징금이 45만원으로, 해당 병원이 이 구간에 속한 것으로 분류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신고된 금액이 이 병원의 전체수입이라고 믿을지라도 이는 매우 느슨한 처분이다. 연수입 30억원 병원의 일평균 수입은 833만원 정도인데, 이 병원의 업무정지에 갈음해 부과하는 과징금은 45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계산하면 전체 수입의 약 5% 수준에 불과하다. 최소치인 20억원으로 잡더라도 8% 수준이다.
병원 입장에선 업무정지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문제 병원도 과징금을 선택했다. 4050만원에 벌금 100만원까지 총 4150만원만 내고 영업을 계속했다. 이 기간 동안 ‘14년 무사고’ 광고를 보고 병원을 선택한 환자까지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망한 권씨 역시 이 광고를 보고 이 병원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솜방망이 처벌이 도덕적 해이 불러와
지난해 8월 국회에선 턱없이 낮은 과징금을 현실화하자며 관련 규정을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의료기관에 턱없이 낮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반복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올해 2월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은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시키거나 거짓·과장광고를 해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에 부과하는 과징금 상한액을 10억원까지 올렸다. 기존엔 5000만원으로 솜방망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과징금 산정기준도 강화해 수입의 평균 3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같은 처분이 합당하냐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충분하다. 영업정지로 받는 피해에 비해 과징금이 턱없이 적어 실효성이 없는 게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병원은 최근까지도 의료법에 저촉되는 광고를 하다 보건소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았다. 1일 서초구보건소에 따르면 문제 병원은 유튜브 채널에 병원에서 수술 받은 환자를 등장시켜 경험담 형식으로 광고를 진행했는데, 보건소는 이 광고에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삭제하도록 고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소는 “의료법은 ‘환자에 관한 치료경험담 등 소비자로 하여금 치료 효과를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며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해당 유튜브 모델광고는 즉시 삭제토록 하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지난 2016년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25살 권대희씨는 이 병원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중 중태에 빠져 49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조사결과 병원은 같은 시간대에 3곳 수술실을 열고 동시 수술을 진행했다. 원장은 수술 일부만 집도하고 수술실을 나갔으며 고지되지 않은 신입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았다. 이 의사와 마취과 의사도 여러 수술실을 오가며 수술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가 흘린 3500ml에 이르는 혈액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 홀로 남아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5분여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회복실로 옮겨지지 못한 권씨를 수술실에 남겨두고 퇴근했다.
검찰이 3년 가까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는 동안 민사 1심 판결에서 병원 측 80% 배상책임이 인정됐다. 양 측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수사검사가 사건 핵심으로 꼽히는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및 의료진의 교사·방조 혐의를 기소하지 않아 유족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한 상태다. 합의되지 않은 의료진이 수술한 것에 대해 사기나 상해죄 역시 적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