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2년 뒤인 2023년 8월30일부터 병원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8월 31일 국회 본회를 최종 통과했다.
7년에 걸쳐 부침을 거듭했던 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릴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의사 단체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며 즉각 반발했다.
이날 통과된 의료법 개정안은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병원 수술실 내부에 CCTV를 반드시 설치토록 강제했다. CCTV는 환자 또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촬영하게 된다. 수술 장면을 촬영할 때 녹음은 할 수 없지만, 환자와 의사 모두가 동의하면 가능하다. 단 응급수술, 고위험 수술, 전공의 수련 목적의 경우엔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두었다.
또 의료기관 책임자는 촬영 영상이 분실·도난·유출·변조·훼손되지 않도록 저장장치와 네트워크를 분리해야 한다. 접속 기록을 보관하고 출입자 관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범죄 수사, 공소 제기·유지, 법원 재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 조정·중재 절차 등으로 관련 기관이 요청하거나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경우가 아니면 촬영 영상을 열람하게 하거나 제공해선 안 된다. 의료기관은 영상을 30일 이상 보관해야 하고, 열람 비용을 요청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의료계는 앞으로 응급 또는 중환자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고 그 피해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환자단체와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무자격자 대리수술과 의료사고 은폐 등을 예방하고 수술실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수술실 내부 CCTV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정안 통과를 환영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법안 통과 직후 “정부·여당은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 전문가들의 충심 어린 목소리와 정당한 주장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실상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여론에만 편승해 대중 영합적 입법을 졸속 강행했다”며 “이 법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업수행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 등을 제기해 법정투쟁을 진행하겠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극소수의 비윤리적 일탈 행위를 근거로 대다수의 선량한 의료인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한다면 전문가적 자율을 심각히 침해하고 의료의 질적 저하, 환자의 생명권·건강권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외과학회,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뇨의학회 등 외과계 5개 학회도 공동성명을 통해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의사의 방어 수술을 조장하고, 위험한 수술을 기피하는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며 “개인의 민감한 정보 노출 우려, 젊은 의사들의 외과계 지원 기피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환자 단체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2014년 강남 일대 미용성형 병의원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무자격자 대리수술로 아들을 잃은 경험을 토대로 1인 시위로 수술실 시시티브이 입법화에 앞장선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 등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법안은 지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환자와 의료인 모두 100% 만족할 수 없겠지만 2년의 유예기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은 수술실 생일 파티 등의 논란으로 2015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후 수술실 내 성범죄와 무자격자 대리수술 등이 문제가 되면서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진척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인권보호에 부합한다며 법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135명의 의원이 찬성했고, 24명이 반대, 24명이 기권했다. 통상 법 시행은 공포 후 6개월 내지 1년 뒤부터인데, 의료인을 포함한 반대 여론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길게 두었다.
이 법안은 앞으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CCTV 설치·운영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등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법에는 “국가 및 지자체는 시시티브이 설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지원 규모를 정하지 않았다.
또 개정안엔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뒀지만, ‘응급 수술’ 또는 ‘위험한 수술’이 분과별로 차이가 많고 주관적인 영역이라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