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오로지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의사의 본분을 망각하는 진료형태가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제보를 하게 됐다.”
유령의사들은 자신의 존재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비록 ‘얼굴마담’ 격인 대표원장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존재를 감추고 수술을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달콤하고, 폭로했을 때 돌아올 피해는 예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령수술이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적발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 개인의 양심에 기댄 고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과거 한 대형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을 했던 의사들의 진술서를 단독 입수했다. 또 유령수술을 했다는 근거가 되는 월급명세서와 근로계약서도 함께 입수했다. 유령수술을 자백한 의사 중 일부는 기소돼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자백한 유령수술의 실태는 참혹했다. 대표원장의 지시에 따라 유령수술을 해야만 했던 의사(봉직의)들은 모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해당 병원은 여전히 강남에서 그대로 영업 중이다. 다만 현재도 이곳에서 동일한 형태의 유령수술이 자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유령수술의 최우선 조건은 ‘환자가 알아서는 안 된다’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수술에 앞서 환자를 재워야 했다. 30년 경력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유령수술을 감추기 위해 심지어 부분마취를 해서 환자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하면서 진행하는 쌍꺼풀 수술조차 환자를 재워서 했다”고 전했다.
환자 잠들면 유령의사가 수술실로
ㄱ전문의는 진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성형외과의 경우 고용된 성형외과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하면서 수술방법에 대한 설명을 해 환자를 믿게 하면, 환자는 수술비를 지불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게 된다.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대에 눕자마자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주사해 재운다. 환자가 수면에 빠진 것을 확인한 후에는 대리의사가 모든 수술을 하게 된다. 환자는 대리수술 의사에 대한 존재를 알 수 없고, 모든 진료기록에서조차 이런 사실을 숨기거나, 아예 기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는 철저히 속게 된다. 환자가 대리수술을 알게 되면 큰 소동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리수술의 대상이 된 환자들은 수술실에 입실해 수술대에 눕자마자 다량의 수면마취제를 맞고 잠이 들게 되고, 곧바로 유령의사가 들어가서 수술하게 되는 것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해서 모든 형태의 성형수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각자가 경험에 따라 특정 전문분야가 생긴다. 유령수술 형태로 운영되는 대형 성형외과 병원은 이 같은 특정 전문분야 의사들을 고루 영입한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영역에 맞춰 환자들을 모두 수술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전문분야가 있는 성형외과 의사는 사실상 환자 상담용 인력으로 쓰였다. 특정분야에 전문자격이 있는 전문의는 인건비가 높기 때문에 상담에 주력해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는 데 이용됐다. 환자들은 해당 전문의가 수술할 것으로 믿은 상태에서 수술대에 눕지만 실제 수술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다른 의사가 대리수술하는 형태, 즉 ‘박리다매 형식’의 수술이 이뤄졌다. ㄱ전문의는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몇 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할 시간에 다른 환자들을 수술로 끌어들이는 일(상담)을 하게 되면 훨씬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유령수술을 하는 의사도 출신 전공에 따라 분업화됐다. “환자가 몰리는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가슴 수술, 지방흡입 수술 등은 성형외과 전문의사가 진찰한 후에 산부인과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고, 사각턱 수술, 광대축소 수술은 대리수술만 하는 치과의사들을 고용해 성형외과 의사들이 진찰·상담한 후 치과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했다.”(ㄱ전문의 진술서 중)
ㄴ전문의는 “환자들에게 대리수술을 숨기기 위해 항상 수면마취제를 투여했다. 수면마취제의 용량이 과다투여돼 환자가 위급해진 경우를 다반사로 봤다. (방송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진) 병원장은 자신이 수술하는 경우가 없었다. 모든 환자를 대리수술했다”고 진술했다. 심지어 환자가 몰리는 방학기간에는 간호학원을 통해 간호사 자격증이 없는 학생을 고용, 수술실에 바로 투입한 뒤 수면마취제 투여 및 수술 보조업무 등 각종 의료행위를 시켰다.
수술 중이라도 상담하러 자리 비워
유령의사들은 상담실장이나 담당직원의 지시가 있으면 수술 도중에라도 수술실을 빠져나가 신규환자 상담을 해야만 했다. 수면마취 상태인 환자에게는 추가로 마취제를 투여, 길게는 30분~1시간 이상 수술실에 환자를 방치한 적도 있다고 ㄷ전문의는 진술했다.
유령수술로 운영되는 병원은 봉직의보다 상담실장이 위에 있었다. 상담실장의 지시가 곧 병원장의 지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ㄷ전문의는 진술서에 “수술 중에 병원 측으로부터 상담을 하라는 지시가 상담실장이나 담당직원 등을 통해서 전달되면 집도의사들은 하고 있던 수술을 중단하고 나가서 상담을 했다. 이때 수술 도중 환자가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면마취제를 지속적으로 주입하기도 했다. 상담이 길어질 경우 전체 수술시간이 길어지게 되므로 수면마취제의 투여량이 많아지게 된다. 수술 중간에 상담을 위해 자리를 비운 시간이 1시간 이상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유령수술 자체도 문제지만 의사 개개인이 환자를 책임지고 진찰 및 수술을 진행하는 형태가 아닌, 상담실장이 지정한대로 의사가 수술하는 방식 역시 유령의사들에게는 관행처럼 자리잡혀 있었다. 애초에 근로계약서에 상담실장이 정해주는 수술법에 따라 수술하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유령의사 소유의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의료행위 범위 설정> 항목에 ‘모든 진료시 ’을(봉직의)’은 상담실장 혹은 상담 코디네이터의 예진 결과, 즉 상담실장 혹은 상담 코디네이터가 고객에게 권한 수술(시술)명을 임의로 변경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실제 강남 일대 대형 성형외과 병원에서 환자가 방문 당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가 환자의 얼굴과 몸상태를 살피며 판단해야 할 부분을 비의료인인 상담실장이 ‘예진’ 명목으로 진행했다. 가슴 수술 관련 의료사고를 다수 일으킨 강남의 한 성형외과 병원은 ‘수술을 받고 싶은데 바로 OOO선생님(원장 이름)을 만나뵐 수 있느냐’는 물음에 “예약을 해도 바로 의사선생님을 만나보실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우선 몸상태 등을 실장님이 확인한 뒤 진료예약을 잡아드리니 원치 않으시면 상담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ㄷ전문의의 진술서에도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 “상담실장이 먼저 상담을 하면서 환자의 경제적인 여유나 지불가능한 수술비 액수, 환자가 원하는 것에 근거해 수술방법을 정해 차트의 한쪽 면에 기입한 후 저에게 변경 없이 그대로 상담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사실상 독자적인 판단으로 수술법을 바꾸기는 어렵다. 특히 근무 초기에는 상담실장이 정해준 수술법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였고, 어느 정도 근무기간이 쌓이고 나서는 상담실장이 정한 수술방법이 너무 황당해 차라리 환자에게 수술받지 말라고 살며시 이야기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상담실장이 수술방법과 종류 결정
ㄹ전문의는 “상담실장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수술 전 해부학적인 상태보다는 환자가 지불가능한 수술비의 액수와 환자의 요구사항을 위주로 수술방법을 결정해왔다. 아무리 내가 성형외과 전문의라도 상담실장이 이미 정한 수술방법과 종류를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근무기간이 길어지거나 경력이 쌓이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수술 종목을 바꾸기도 하고, 수술효과가 없음을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담실장이 정한 수술방법을 바꾸는 것이 반복되면 상담 수를 줄인다든지 해당 의사에게 주의를 줘서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들 4명의 유령의사들은 병원 내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 같은 내용을 외부로 알리지 않았다. 근로계약서가 발목을 잡았던 부분도 있지만 유령수술을 통한 대가 역시 컸기 때문이다. 유령수술을 맡아온 한 성형외과 전문의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왜 이들이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비록 몇 년 전 월급명세서이지만 유령의사들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달에 3000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아 갔다.
유령수술 병원의 <급·상여명세서>에는 특이한 항목이 있었다. ‘Given 인센티브’ 항목과 ‘Taken 인센티브’ 항목이다. ‘G’는 집도의가 환자와 상담한 뒤 수술은 유령의사가 했을 경우 유령의사에게 지급하는 돈이고, ‘T’는 유령의사가 집도할 것처럼 환자와 상담하고, 또 다른 유령의사가 수술했을 때 또 다른 유령의사에게 지급하는 돈이라는 것이 해당 의사의 설명이다.
한 전문의는 ‘G매출’로만 한 달 동안 26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중 일부를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급받았다. 이 같은 형식의 지급은 근로계약서에도 기재돼 있었다. “성과급의 계산은 n천만원을 초과한 유효 월매출의 5%(‘을=봉직의’를 고객이 집도의로 알고 있는 경우) 혹은 2%(‘을’이 ‘을’이 아닌 자를 집도의로 알고 있는 경우)로 한다.” 유령의사와 또 다른 유령의사 간의 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문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병원은 유령의사들의 진술과 달리 이 같은 형태의 근로계약서 조항에 대해 “집도의가 수술을 하고, 다만 옆에서 도와주며 수술방식을 배우는 의사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지급하려고 만든 조항일 뿐 유령수술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80906001&code=940100#csidxabf6e9a42c0c89aa1a881dbdad03b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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