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수많은 과학자들은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왔다. 하지만 최근 생물학적 제약으로 인해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없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과 생활 조건이 개선되었고 이로 인해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비율이 감소해 수명이 길어진 결과가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 증가로 이어졌을 뿐, 노화가 진행되는 속도가 느려져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이유, 유아기 사망률에 좌우된 것
14개국 42개 기관 연구진은 인간과 30개의 비인간 영장류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기대 수명과 수명 균등(lifespan equality)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다. 기대 수명은 인구 집단 내에서 개인이 사망하는 시점의 평균 나이를 말하며, 수명 균등은 사망 연령대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특정 인구 집단 내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비슷한 연령대에 사망한다면 수명 균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망률이 다양한 연령 대에 퍼져 있다면 수명 균등은 낮아진다.
인간의 경우 수명 균등은 기대 수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수명이 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늦은 나이에 사망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대 수명이 짧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 시기는 더 다양한 연령대에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패턴이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지 이해하기 위해 연구진은 비인간 영장류로 눈을 돌렸다. 연구진은 여러 시대와 지역에 걸친 9개의 인구 집단과 야생 동물 17종, 동물원 동물 13개 종 등 총 30개 영장류의 출생과 사망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기대 수명과 수명 균등 간에 나타나는 연관성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영장류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영장류의 평균 사망 연령에서 나타나는 차이의 주요 요인은 유아기 및 청소년기 사망률이었다. 즉, 기대 수명과 수명 균등은 집단 내 개인의 노화 비율이 아니라, 노화와 무관한 이유로 얼마나 많은 인구가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사망하는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노화 불변의 법칙, “모든 인간은 같은 속도로 늙는다”
전반적으로 이번 연구는 성인기에 들어선 이후 노화가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진행된다는 ‘노화 속도는 불변(invariant rate of ageing’)’한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모든 인간은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지만 서로 다른 나이에 죽는 것은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생활 조건이 개선되면서 유아기나 청소년기 사망률이 감소했고 그로 인해 수명이 늘어났다. 즉, “기대 수명의 증가는 노화 시계가 늦춰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아기 및 청소년기 생존율 향상의 통계적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의 사망 위험은 어릴수록 높고 성인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가 노화가 시작된 후에 다시 증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강과 생활 조건이 개선되면서 개인의 수명은 길어졌고, 이는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 증가로 이어졌다.
연구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노년기에 죽음을 향한 궤적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의 의학적 발전이 생물학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