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걸까. 아님 짧았던 걸까. 새삼스레 뒤를 돌아보니 여러가지 색의 감정들이 겹쳐 지나가고
그렇게 약 7개월간의 감정들과 이야기, 그리고 기록들을 열어보게 되었다.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밀려온다고 했던가. 2년만에, 정말 어렵게, 동화처럼 마음을 열게 된 누군가로부터
재미있다는 듯 짓밟히고 짓이겨져 다 알고있었음에도 모른척하고 새어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노력해봤지만,
그렇게 그 사람의 눈에서 비치는 반짝이던 색은 어둑한 죽은 눈으로, 그와 동시에 흥미가 다 떨어졌다는 듯 마음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처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말들에 너덜너덜해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수하게, 순수하지 못하게 길바닥에 버려졌다.
이에 질세라 코로나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직장의 헤드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을 해왔던 탓이었는지,
직장마저 기울기 시작했다. 290km를 당일치기로 매주 오고 가고,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할 수 있었던 자금줄은
이내 삶마저 위협해오기 시작했고, 헤드는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이해해라라는 스탠스를 취했다.
동시에 이전의 수술에서의 부작용이 점점 눈에 띌 정도로 덮쳐왔기에 한 병원을 선택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내가 느끼던 코의 부작용의 개선과 향상이 아닌 의사의 개인적인 미적 가치만으로 점철되었던 결과물만이 남았다.
"이 코는 당신의 얼굴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입니다. 우리가 분명 수술전에 코의 모양에 대해 상담을 했지만,
저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코를 열어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술 계획을 다시 짜곤 합니다.
이 코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보면, 그 사람들도 다 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을거에요.
그렇게 5년, 10년 살다보면 분명 저에게 감사하는 날이 올 겁니다."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아보았던 탓이었을까, 붓기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하게 들리고 억지로 쑤셔넣어둔 듯한 실리콘은
의사의 의기양양한 자화자찬의 말과는 반비례하게 나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고, 여느때와 다름 없이 시동을 걸었다.
멍해진 채로 운전을 하며, 여러가지 생각들이 목을 조여왔다.
"뭘 믿은거야?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안된다고 연신 울부짖었으면서, 고작 배운게 이거였어? 이건 전부 네 스스로의 탓이야.
호흡의 간격이 짧아지기 시작했고 억지로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연신 터져나왔으나, 텅 비어있는 집으로 꾸역꾸역,
교통 체증의 정차 시간동안 노래의 볼륨을 최대로 올린 뒤 울어버렸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차올랐던 감정을 털어버리자 이내 차분해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너무 쉽게 누군가를 믿어버린 탓이리라.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선택은 여러방향으로 존재했고 그 중에 최악의 카드만을 연거푸 뽑아온 내 스스로의 실책이지.
그렇게 마음속 한구석에 목표가 생겼다.
재수술을 위한 회복기간인 최소 반년.
그동안에, 나처럼 상처받고 성형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는 사람은 두번다시 없게 하겠노라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이 이상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낮에는 오전을 위한 직장에, 오후에는 내 원래의 직장에, 퇴근 후에는 미처 다 끝내지 못했던 공부를 하곤,
새벽 두시에서 세시가 되어 하루의 공부가 끝날 시간에는 바로 성예사를 켜곤 나와 비슷한 예사들에게
그들이 느꼈을 절망감과 서러움에 공감하고 최대한의 정보를 찾아 도우려 시도하며 하루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예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는 나만의 기준으로, 서울에 있는 60개의 병원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이틀에 병원 한개씩, 나만의 기준으로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등등 세부적이고 적나라하게
모든 정보들을 수집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좀먹던 어둠이 가고나서야, 이내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길었다. 결코 짧지 않았으나, 넌지시 언젠가 학생에게 이야기를 건네었던 말 처럼,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넌 틀렸어..' 농담조차 되지 못하는 말을 떠올리곤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번져왔다.
타이밍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를 악물고 더이상의 실패는 없을것이라고 울부짖었던 탓일까.
정말 내가 생각했던 현재의 내 코에 적합한 수술방법과 재료, 모양에 대해 제안을 하는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수술 예약을 잡을 수 있었고, 수술 전주에 모든 공부가 마무리 되었으며,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에서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일만 했던 내가 휴가를 신청하니 양측에서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오늘을 돌이켜보면 참 무엇인가, 마음속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여느때처럼 오전근무를 끝마치고, 마실 것을 늘 사러가는 단골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나지막하고 조용했던 노인분의 목소리는 필자가 한번도 알 수 없었던 윗 어른들이 계셨다면
이런느낌이지 않았을까-라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평소처럼 커피 두병. 평소와 다름없이 노인분께 농담을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저 일주일간은 못 찾아뵐 것 같아요.
무엇 때문에 쉰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나, 이 말을 들은 노인분은 깊게 패인 삶의 지혜만큼이나
혜안이 있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연륜의 영향이었는지, 그분께서는 말을 이으셨다.
"잘 생각했어. 너는 좀 쉬어야해."
응..? 갑자기? 동그래진 눈을 보며 그분은 또 토끼같은 표정 짓냐고 웃으셨지만,
그냥, 누가 이렇게 다 늙은 노인네한테, 아무리 물건 사러 온다고 쳐도 이렇게 말 걸어오고 농담하면서 시간 보내주려하겠냐.
종종 이야기했던 것들에 대해 들어보니 열심히 사는 것도 사는거지만, 마음쓰는게 고맙다고.
그리고.
"다 잘될거여. 마음 편하게 먹어"
순간 입이 떨어지질 않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내 속을 들여다보신걸까.
잠시 말을 잃은채로 머리를 긁적거리곤 최대한 밝게 웃으며 그럼 다음주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과
문을 나섰다. 바로 차로 달려와서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끝내, 7개월간의 모든 기억들이, 억누르고 억눌러서 터져나오지 못하게 꾹꾹 눌러담았던 모든 감정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주차장의 어둑한 차속에서 오랜만에 소리내어 펑펑 울며 맘 속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물론, 이 글을 적고있는 지금도 연거푸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 했던가. 지금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다 올바르게 흘러가는게 맞았을까
혹여나 내가 놓친 것이 없지는 않았을까 기억과 기록들을 두번 세번 반복하며 읽고 있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도, 그리고 잠시 무의식의 품에 안겨 잠시 잠들기까지도 또 만감이 교차하겠지.
하지만, 한번 더 믿어보려 한다.
다 잘 될 것이라고.
이 글을 읽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수술을 준비중인, 부작용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린 모든 예사들의
마음과 감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이런 마음아픔과 절망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 이 또한 끝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도와주었던,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는 예사들이 겪은 것 처럼.
다시한번 밝게 웃으며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날은 분명히 다시 당신의 상처입은 마음을 다독이러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같이 이겨내자.
23.04.14.
기억의 끝자락에서,
예사가, 예사들에게.